**이외수-(감성사전 31~50)**

2011. 10. 27. 18:57″``°☆아름다운글/◈이외수님글

이외수-(감성사전 31~50)


*31. 삼라만상
라면 세 그릇으로 가득 채운 상.

*32. 자살
자신의 목숨이 자기 소유물임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명확히 증명해 보이는 일.
피조물로서의 경거망동. 생명체로서의 절대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

*33. 출발점
과거를 끊어낸 자리. 미래의 생장점生長點. 현재 바로 그 자리. 윤회의 매듭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 시간과 공간의 逍失點. 인생의 모든 새벽.

*34. 길
동물은 생존을 위해 길을 만든다. 인간들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을 만든다.
땅 위에도 만들고 땅 속에도 만든다. 하늘에도 만들고 바다에도 만든다.
그러나 인간들은 본디 자신들이 어느 길로 왔으며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를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어로는 그 길을 道라고 표기하며 개개인의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설파되어 왔다.

*35. 시계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 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

*36. 문
드나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설치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음 안에 감옥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감옥마다 견고한 문이 하나씩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법칙과 현상들이 갇힌다.
모든 이름과 추억들이 갇힌다. 그러나 아무 것도 드나들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안다고 하더라도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있는 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버림으로써만 그 열쇠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하나의 사물들은 하나의 문이며
언제나 자신을 향해 열려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닫혀 있었던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37.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38. 자물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이며 서랍이며 장농이며 금고 따위에 설치하는 방범장치의 일종.
주인들은 대개 인간을 불신하고 자물쇠를 신뢰하지만 노련한 도둑을 만나면 무용지물이다.
그 자물쇠마저도 훔쳐 가버리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때로 마음의 문에까지 자물쇠를 채운다.
자물쇠를 채우고 스스로가 그 속에 갇힌다.
마음 안에 훔쳐갈 만한 보물이 빈약한 인간일수록 자물쇠가 견고하다.
그러나 그 누구의 마음을 걸어 잠근 자물쇠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불길로 그 자물쇠를 녹여 버리는 일이다.

*39. 총
새가 그 끝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비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무기.

*40. 소망
자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욕망이라고 하고
타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소망이라고 한다.
욕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고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욕망은 영웅을 따라다니지만
소망은 神을 따라다닌다. 그러나 소망과 욕망은 같은 가지에 열려 있는 마음의 열매로서
환경의 지배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형태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41. 호롱불
초가삼간 토담벽에 펄럭이는 세월이다. 세월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이다.
어머니 귀밑머리에 스며드는 놀빛이다. 천 년을 침묵으로만 다스려 온 설레임의 불꽃이다.
겨울밤 심지가 타들어가는 아픔으로 피워 올린 그리움이다. 흥건한 눈물이다.

*42. 冬至
시간이 결빙된다. 세월이 정지한다. 숲이 해체된다.
들판은 백설에 덮여 밤에도 눈부시고 하늘은 빙판 같아서 달빛이 더욱 시린데
강물은 얼음 밑에서 속삭임을 죽인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가슴에 아직도 그리움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면의 고통도 가장 긴 날이다.

*43. 빙하시대
지구의 전 생명체가 신으로부터 냉동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44. 굶주림
인간을 가장 비굴하게 만든다. 인생을 가장 비참하게 만든다. 인격을 가장 비천하게 만든다.
자신을 동물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죽음보다 잔인한 형벌이다.
그러나 현자는 육신의 굶주림을 통해
정신의 배부름을 얻음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을 보여 준다.

*45. 촛불
迦葉이 들어 올린 한 송이 연꽃이다. 어둠 속에 벙그는 부처님의 미소다.
살이 녹고 뼈가 타서 적멸의 빛이 된다.
중생들은 대개 자신들이 촛불처럼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살을 녹이고 뼈를 태우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으므로
아직도 세상에는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46. 크리스마스
서양으로부터 건너온 기독교인들의 가장 화려한 축제일이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는 신의 사랑을 더욱 널리 전파할 것을 마음 속에 깊이 다지는 날이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교인들은 많아도
예수의 탄생에 즈음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아기들의 영혼에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하는 교인들은 매우 드물다.

*47. 우상
인간이 만든 神. 무지와 욕심이 결합해서 탄생시킨 미신의 길잡이 또는
어떤 계층에 절대적 추종자로 지목되는 인격체. 신과 우상이 다른 점은 그 절대성에 있다.
우상은 그 절대성이 순간적이고 신은 그 절대성이 영속적이다.

*48. 대학입시
대학생을 선발한다는 명목으로 재수생을 배출해 내는 시험제도.

*49. 고문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인간이 살고 있는 나라라면
제일 먼저 공연 정지 처분을 내려야 할 악마의 조작극이다.
자백을 강요받기 위해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로서
무고한 양민을 페인으로 만들기 쉬운 인간 이하의 월권행위다.
비록 손상된 육신은 회복될 수 있다 하더라도 상처받은 영혼은 치유되지 않는다.
고문을 묵과하는 처사는 살인을 묵과하는 처사보다 몇 배나 더 비열하고 잔인하다.

*50. 비상구
이 세상의 모든 통로 또는 위급할 때의 모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