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7. 19:02ㆍ″``°☆아름다운글/◈이외수님글
이외수-(감성사전 51~75)
*51. 술
마약이다. 절제하면 쾌락을 가져다 주지만 과용하면 불행을 초래한다.
마실 때는 찬양하게 만들고 끊을 때는 저주하게 만든다.
유사 이래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는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다는 설도 있다.
뼈저린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쾌락을 담보로
영구적인 불행을 대부해 주는 악마의 독액이다. 그러나 술은 때로
사랑을 불 붙게 만드는 묘약이 되기도 하며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감로수가 되기도 한다.
이태백과 같은 詩仙은 술 속에서 달빛과 시를 건져내기도 했으며
오마르 하이얌과 같은 酒聖은 술 속에서 루바이야트라는 언어의 보석을 건져내기도 했다.
*52. 음주운전
자동차가 운전수 대신 술에 취한 승객을 탑승시킨 채 교통사고를
일으킬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행위. 또는 교통수단을 이용한 취중 살인 예비음모.
*53. 불행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어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54. 기도
신이 매사를 완벽하게 선처해 놓았는데도 이에 불만을 품은 인간들이 처우개선을
구두로 상소하는 행위.
*55. 주정뱅이
술이 인간을 마셔 버리고 동물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려고
발악적으로 애쓰는 사람.
*56. 엄숙
권위주의가 형식주의와 결합해서 만들어 낸 비만형의 부랑아.
타인에 대한 존엄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용상표.
자신을 사실 이상의 인격체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착용하는 무형의 가면.
행사장이나 회의실 같은 장소에 의레적으로 동참되는 고위층의 들러리.
무언으로 강요하는 도덕의 중량.
*57. 눈보라
겨울이 깊어지면 바람의 함성을 타고 수 천만 마리의 백색 나비 떼가 어지럽게 난무하며
마을에 출몰한다. 눈보라다. 때로는 길이 막히고 통신이 두절된다.
시간도 깊어지고 그리움도 깊어진다.
*58. 말단사원
하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 받는 대우는 가장 적은 고용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제일 먼저 참혹한 겨울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은 따스함에도 쉽게 언 가슴이 녹고 작은 감동에도 쉽게 눈시울이 젖는다.
아직 기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59. 공처가
마누라에게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편들을 일컬어 공처가라고 한다.
공처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경처가가 되는데 마누라의 옷자락만 스쳐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편들을 말한다. 모두 마누라를 상전처럼 떠받들며
살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공처가나 경처가로
만드는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기를 포기한 여자다.
남편의 가슴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남편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여자다.
비록 평지풍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애처가보다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60. 학구파
학점구걸파의 준말.
61. 개밥그릇
개의 먹이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모든 용기
*62. 고드름
겨울의 수염. 동장군의 이빨. 북풍의 발톱.
*63. 편지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문자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통신수단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자의 발생연대와 편지의 발생연대는 동일하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리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이 편지나 다름없다.
오늘날의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애용된다.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인생을 바꾸게 만들고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영혼을 구원케 만든다.
봄날의 햇빛 속에 흩날리는 꽃잎도 겨울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눈보라도 소식의 천사 가브리엘이 배달하는 하나님의 편지다.
그 속에 온 우주가 아름답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64. 벽
일반적으로 어떤 지역이나 지점을 수직의 면으로 가로막아
공간을 한정시키는 설치물을 벽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뛰어넘을 수 있는 한계점을 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들은 마음 안에도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어떤 군주들은 악법으로써 나라의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백성을 가둔다. 벽은 가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벽이 없는 사람은 마음 밖에도 벽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자유인이다.
*65. 군대
전쟁에 대비해서 조직된 무장단체.
자국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그치는 군대와 타국의
인명과 재산을 탈취하는 데까지 주력하는 군대로 대별된다.
전자는 약소국의 군대고 후자는 강대국의 군대다.
*66. 진눈깨비
저물어 가는 겨울 풍경 속으로 쏟아지는 비창이다.
세월의 통곡이다. 목메이는 그리움이다.
쓰라린 아픔이다. 부질없는 사랑이다. 회환의 눈물이다. 시린 뼈의 신음이다.
*67. 고스톱
금세기에 이르러 방방곡곡 가가호호마다 유행하기 시작한 개인 금융 사업의 일종이다.
화투를 무기로 소규모의 생존경쟁에 뛰어들어 적들의 호주머니를 약탈함으로써
자신의 정신건강을 양호케 하고 경제생활을 윤택케 만든다.
화투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그려져 있으며 그 향기에 도취되면
패가망신을 해도 화투를 버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만다.
양쪽 팔이 부러지면 발가락으로라도 화투를 쳐야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항간에는 마음을 비우면 끗발이 좋아진다는 설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진정으로 마음을 비운 자라면 호주머니까지 비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68. 거지
부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땅을 베개로 삼아 무소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는 청빈도인.
신분증이 없는 세금 징수원. 전 국민을 납세 대상자로 삼고 있으며
납세 방법은 최대한 자율화되어 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지에게서 또다른 예수의 모습을 본다.
*69. 독도
출렁거리는 파도 속에 허리를 내맡긴 채 無念無想에 잠겨있는 東海古佛.
*70. 봄
冬安居가 끝나면 봄이 온다. 봄은 겨울을 가장 쓰라리게 보낸 사람들에게는
가장 뒤늦게 찾아오는 해빙의 계절이다. 비로소 강물이 풀리고 세월이 흐른다.
절망의 뿌리들이 소생해서 소망의 가지들을 자라게 하고 소망의 가지들이 소생해서
희망의 꽃눈들을 틔우게 한다. 눈부신 슬픔을 알게 만들고 눈부신 사랑을 알게 만든다.
초라한 서민들의 늘어진 어깨 위에도 좁쌀가루 같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죽은 행려병자의 남루한 누더기 위에도 생금가루같은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 햇빛이 가득해도 마음 안에 햇빛이 가득하지 않으면 아직도
봄은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겨울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71. 허영
열등의식과 욕구불만을 원료로 배합하고 허욕이라는
향료와 허세라는 색소를 첨가해서 만들어 낸 마약의 일종이다.
중독되면 정신이 황폐해지고 영혼이 척박해진다.
자신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필요 이상
겉치레에 신경을 쓰는 특질을 나타내 보이다.
선척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독될 위험이 더 높다.
중독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허영의 둥지에서는 동경의 알이 부화되고
동경의 알 속에서는 향락의 새가 태어난다.
그 새는 사치의 날개를 활짝 펼쳐 중독자를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안내한다.
허영에 중독된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료기관은 아직 지구상에 설치되지 않았다.
백약이 무효하고 마음을 비울 수만 있다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사실만 상식화되어 있다.
*72. 절망
혼수상태에 빠져 버린 희망.
*73. 섬
모든 이름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영혼들도 하나의 섬이다.
모든 혹성들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성단들도 하나의 섬이다.
섬에서 섬으로 그리움의 바다가 흐른다.
가슴 안에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만이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74. 날개
산을 넘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
바다를 건너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
인간은 육신의 날개는 없지만 영혼의 날개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은 한평생 자신에게 그런 날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
욕망에 눈이 가리워져 소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75. 물비늘
해 질 무렵 바다 위로 쏟아지는 태양의 황금빛 파편들이다.
달밤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강물 위로 회유하는 은어 떼다.
침묵의 호수 위로 떠다니는 바람의 희디흰 잔뼈들이다.
'″``°☆아름다운글 > ◈이외수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외수-외로운 세상** (0) | 2011.10.27 |
---|---|
**이외수-(감성사전 76~100)** (0) | 2011.10.27 |
**이외수-(감성사전 31~50)** (0) | 2011.10.27 |
**이외수-(감성사전 01~15)** (0) | 2011.10.27 |
**이외수-<바보, 바보>중에서** (0) | 2011.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