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십 밀리의 꽃대
/ 유병근
누가 두고 간 화분이 지금 막 꽃대를 올리고 있다
이백십 밀리의 꽃대가 키를 높이 세우는 신발장 안에는
다른 것은 없고 꽃대를 자랑하는 화분만 있다
화분대에 아무도 신발을 올리지 않는다
화분대에 아무도 구두숟가락을 올리지 않는다
신발장이 화분대가 되기까지 이백십 밀리의 꽃대가
쑤군쑤군 꽃대를 뽑아올리고 있다
나는 화분대의 변두리를 쓸고 닦아준다
신발의 코에 광을 내던 일이 떠올라 한참 꽃대를 보고 있다
광을 낸 꽃대가 나를 보고 있다
신발장이 화분대가 된 용도 변경을 당분간 입 다물고 있다
투표일은 며칠 남지 않았다
-'포엠포엠' 2012 가을호에서-
++++++++++++++++++++++++++++++++++++++++++++
▶유병근=1931년 경남 통영 출생.
1970년 '월간문학'등단.
시집 '통영벅수', 수필집 '아이스댄싱' 등.
신발을 넣어두던 신발장이 어느 날 갑자기 화분대로 용도 변경되었다.
이제는 명실공히 신발장이 아니므로 누구도 신발을 넣지 않고
구두 숟가락도 올려놓지 않는다. 여러 꽃송이가 쑤군쑤군 서로 다투어
이십일 ㎝가 아닌 이백십 ㎜의 키를 높이며 살아있는 화분대이다.
반성과 성찰 없는 무감각한 삶의 자세를 객관화하여 자유로운 창의와
비판과 신선한 거역과 뒤바꿈의 유연한 사고는 정말 쓸모 있는 실용적
가구처럼 빛난다. 올바른 결단이 요구되는 투표처럼.
오정환·시인
국제신문2012-09-02 21:17
http://blog.daum.net/kdm2141/22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