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기대어
-도종환-
나무야 네게 기댄다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기댈 사람 없었다
네 그림자에 몸을 숨기게 해다오
네 뒤에 잠시만 등을 기대게 해다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는 걸 안다
네 푸른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잠시만 눈을 감고 있게 해다오
나무야 이 넓은 세상에서
네게 기대야 하는 이 순간을 용서해다오
용서해다오 상처 많은 영혼을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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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1954년 청주 출생.
시집' 접시꽃 당신' 등 다수.
신동엽창작상, 윤동주상(문학 부문) 등 수상.
하나의 사물과 만나서 교감한다는 것 그것은 진실한 순간을 만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 사이를 떠나와서 나무에 기대선 시인은 나무가 잎을 떨구어내는
일처럼 외롭습니다. 귀한 이름과 귀한 생을 겨우 붙들어 나무 그림자에 숨기고
그냥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 시인뿐이겠습니까.
길을 돌아 돌아서 물빛 냄새나는 빈 몸을 이끌고 정자나무 한 그루 마음에
깃들여 놓고 기대어 선,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머니 하나 만들어
달지 않는, 그래서 품 넓은 나무에 기댄 모든 이녁들에게 이 세상 혼자 와서
마냥 외롭지요? 물어봅니다.
권정일·시인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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