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는 것들
-박지영-
집에 혼자 있으면요
세간살이가 부스럭거려요
입도 없는 것이 말 걸어와요
잠시도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어디선가 소리가 나요
옷장에서 쩍 나무 갈라지는 소리
부엌 수도꼭지에서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온갖 소리 다 들려요
가만히 있으면서 조용히 소란스러워요
선반 위 손때 묻은 주전자가 좀 봐 달라고 칭얼대요
집안에서 나는 소리는 눈길 잡아끄는 힘이 있어요
귀찮아 안 보려 해도 안 볼 수 없어요
다가가면 아무 소리도 안 보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나요
비틀어도 잠가도 새어나오는 소리
시계 소리처럼 내 귀를 갉아먹는 소리
어느 구석에서 또 보이지 않는 소리가 나요
혼자 있으면요 자꾸 말 걸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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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1956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이화여대 불어교육과 졸업.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2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서랍 속의 여자』(민음사 ,
1995)와『귀갑문 유리컵』(문학세계사, 2002)이 있음.
사물에게서 나는 소리든 사람의 소리든 작은 소리는, 작고 낮은 소리는 고요한
혼자의 시간 속에서만 들을 수 있다. 각 사물들의 제 타고난 소리, 순수한 목소리는
그때 비로소 들을 수 있다.
돌과 사과와 담장과 밥의 소리, 옷걸이의 소리. 생각해보면 소리가 없는 물건은 없다.
듣는 귀가 없을 뿐이다. 늦은 밤 부엌에 나가보면 못 보던 빛, 못 듣던 소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포개진 아이 밥그릇 모서리의 빛, 그리고 국그릇에서 나는 소리. 숟가락 통에서는
또 어떤 소리들이 들리던가. 그 그리움의, 겸허의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물들이
친족이다. 지금 집에 없는 사람의 밥 먹는 소리를 떠올려 본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Chosun.com-2013.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