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관식
/ 조 원
어딘가에 묻히고 싶어
가을 나무 아래 선다
누런 잎사귀들이
머리 위로 한 무더기 쏟아진다
검은 왁스가 칠해진 구두와 푸른 재킷을
아직도 벗지 못했다
살아야 할 것들이 죽어서
가슴에 봉분을 세우는 저녁
당신은 이곳에 뿌리를 묻고
바람을 견디었다
한철 지나고서야
코끝에 주검을 실었다
공책처럼 펼쳐진 보도블록
오늘은 넘치는 필체로
빈칸의 그리움 모두 채울 것이다
당신이 써 내려간 문장 따라
조용히 알몸을 습작한다.
-----------------------------------------------------------------
▶조 원=1968년 경남 창녕 출생.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잡어' 동인
〈시작노트〉 당신이 보고 싶다. 아찔한 그리움이다. 먼저 간 당신의 손끝에 실이라도
매달아 저승까지 따라가 봤으면 좋겠다. 낙엽이 한 삽씩 쏟아질 때면 나는 은행나무
아래 서서 체온이 덮이는 연습을 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나와 동고동락했던 분들을
영원히 못 만나면 어떡하나. 이맘때면 살고 죽는 일이 소름 끼칠 때가 있다.
kookje.co.kr-201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