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김치 -장옥관-
시린 속살의 절인 배추와 파릇한 속청, 살얼음 낀 곰삭은 국물은 갓서른에 삼남매의 홀어미가 된 내 처
형의 화장기 없는 무명 속곳이다 마늘·달래·무릇· 김장파·실파·의 오훈채가 들어가지 않은 절 음식은 이미 고사리과의 목록,
젓갈에 길든 입맛에는 맞지 않겠지만 눈물로 발효된 찹쌀풀의 김치맛이거나 전나무에 얹힌 납설 녹은 물맛이다 (하략)
-시집 '하늘우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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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1955년 경북 구미 출생. 1987 '세계의 문학'으로 활동 시작. 시집 '황금연못' '바람소리를 듣다' 등.
뺄셈의 시다. 붉은 태양초 고춧가루, 생강, 파, 마늘, 젓갈 등 갖은 양념이 골고루
듬뿍 들어간 김장김치가 덧셈의 시너지효과를 보는 음식이라면, 슴슴한 백김치는
뺄셈의 음식이다. 뺄셈에도 시너지효과가 있다면 욕망의 단호한 절제일 것이다.
청춘에 혼자되어 세 아이를 기르게 된 여인의 생은 소금에 절여진 채 끓어오르지
말라고 큰 돌로 꾹 눌려진 무 배추와 다름없다. 뜨겁고 매운 욕망의 양념을 덜어내는
순간, 백김치는 식욕을 만족시키는 먹을거리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숭고의
자리로 들어 올려진다.
넘치는 덧셈의 과부하에 걸린 자극적 욕망의 양념을 덜어내는 아침, 평생 겨울의
자리에자신의 삶을 내려놓고, 눈 녹은 물, 눈물로 발효된 백김치의 맛이 서늘하다. 최정란·시인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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