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뜨겁던 여름
나는 매일 해바라기에게 인사했다
주전자를 들고
해바라기에게 인사했다
목이 말라도
주전자의 물은 축내지 않았다
잎 큰 해바라기의 그늘 속에도
눕지 않았다
오후 두 시의 태양 아래
뜨거운 머리카락을 숙이며
해바라기에게 인사했다
그해
그 무섭던 여름
활짝 열린 철문 밖, 큰길에도
사람이 없고
구름도 내 위로는 지나가지 않았다
------------------------------------------------------------
▶박상순=(1962~ )서울 출생.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Love Adagio』.
이 시는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의 연작시다. 빵과 기차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건
속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해 여름, 나는 구름 한 점 가려주지 않는 태양
아래 홀로 남겨졌고, 인사를 하듯 고개를 떨군 채 해바라기에게 매일 물을 주어야 했다.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4년 뒤’의 나는 마을에 불을 지른 나쁜 소년이었다.
그리고 1년 뒤 자책과 후회 속에서 목이 말라도 주전자의 물을 축내지 않고, 그늘 속에
도 눕지 않는 가난하고 홀쭉한 소년이 되어 있었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