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박장호◇
눈 뜨면 새벽이다.
호출할 수 없는 이름이 나의 이름을 호명한다.
호출 당한 나를 쫓는
하얀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지금의 반만 했을 때 나는
말의 꼬랑지를 만지작거렸다.
내 허벅지는 말의 발길질을 간신히 피했지만
내 전부가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영상엔 생길 뻔한
상처의 피고름이 맺혀 있다.
그날 이후 말에 쫓기는 꿈을 꾼다.
얼굴이 지워진 기수는
내가 쓰는 이야기 밖으로 나를 내몰았다.
나는 비가 오는 거리로만 쫓겨 다녔다.
왜 땅이 젖기도 전에 키가 자라는 것일까.
불안이 계절 되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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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1975~ )서울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내가 쓴 이야기를 말이 지우는 이야기. 나는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내가 꿈꾸는 시적 이상은 무참하게 깨진다. 각박하고 비정한 생활 속으로 진입해
야 하기 때문이다. 호출할 수 없는 이름이 나의 이름을 호명한다는 건 시적 이상을 상
실한 나의 유령이 시인을 호출한다는 것이다.
생활이 부르는 소리는 말발굽소리처럼 요란하고 위풍당당하다. 어린 시절 말의 꼬랑지
를 만지작거렸다면, 저 말발굽 소리는 더 광포하게 들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피고름
을 맺는다. 내가 쓴 이야기를 지워야 하는, 생활과 시 사이에서 나는 불안으로 쏟아져 내
린다.
<황병승·시인>
joins.com/201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