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몇 평 펼치려는데
작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잎사귀들
무화과나무에도 마른장마가 들었다
손바닥이 저렇게 넓적해야 빗물이 잘 고이지
손바닥이 넓적해야 감싸 안을 수 있지
가뭄드니 입천장까지 말라
나뭇잎 문패를 따고 숨어든 빈집에서
무릎 세워 혼자 듣던 빗소리
초록 잎을 뜯어다 그날의 시를 써볼까
비설거지는 거둬들이고
책상은 창가와 맞붙여놓고
무화과나무 아래서 저녁을 맞는다
내 손가락과 푸른 다섯 손가락을 포개놓으면
그러면 비가 올까
그르친 사랑이 다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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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자=1958년 서울 출생.
2005년 《시와 정신》봄호 등단.
시집 '술병들의 묘지'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작노트〉
그립고 애타는 일이 어디 사람에게 뿐이랴. 한 그루 초목에게도 마른 땅을 기는 벌레에게도
바람이 있으니 그러함으로 내일이 있다. 잠깐 비 지나갔다. 빈부, 우열, 좌우가 갈려 타들어
가는 세상이 조금 촉촉해졌다.
kookje.co.kr/201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