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흉곽에서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물먹은 성냥처럼 까무룩 꺼지는 파찰음이다
질 낮은 담배와의 물물교환이다
이 기침의 연대는 석탄기다
부엌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원천징수하듯
차곡차곡 꺼내어 쓴 그을음이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아랫목으로 구들장으로
아궁이로 내려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폐(廢), 적(寂), 요(寥) 같은 단어가 숨어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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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1967~ )충북 충주에서 출생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가 있고, 『두근두근』,『꼬리 치는 당신』
등의 산문집과, 『미래파』, 『입술에 묻은 이름』,
『당신을 읽는 시간』 등의 평론집과 해설집을 펴냄.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을 받았다.
노인들은 자주 아프다. 기억력도 나빠진다. 한 작가가 얘기했듯 노인의 기억이란 “아무 데
서나 드러눕는 개”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 노경(老境)에는 거기 어울리는 삶이 있다. 늙음
이 곧 병은 아니지만 병이 오래 머물다 간다. 흉곽에서 기침을 꺼내는 할머니는 오래된 흡
연자다.
담배를 피운 지 오래되었으니 기침의 연대도 오래되고, 폐도 온통 까맣겠다. 할머니는 기침
을 하며 고적한 나날들을 견딘다. 노경의 뒤안길에 펼쳐진 폐(廢), 적(寂), 요(寥)라는 둥지
속에서 죽음이 부화(孵化)를 기다린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