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
밤비에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같은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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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1941~ )경북 안동에서 출생.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 1970년 첫시집 『달하』를 간행한 이후
『물로 바람으로』(1975) 『월령가 쑥대머리>(1990),
<봄비 한 주머니>(2000) 등 10여 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출간했고,
수필집 『우리를 영원케 하는 것은』(1988) 『축복을 웃도는 것』
(1994) 등과 장편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1990)
『땡삐』(1994) 등의 작품이 있음. 한국펜문학상(1996),
정지용문학상(1998), 월탄문학상(2000) 등을 수상.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다가 깨어나 밤비 소리에 귀 기울인다. 밤비 소리는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이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로 들린다. 비는 새벽녘에 겨우 그친다. 왔다가 돌아가는 게 어디 밤비뿐이랴. 젊음
도 사랑도 기회도 그렇다.
내게도 젊음 사랑 기회가 다 있었는데, 이것들이 왔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가는 소
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소중한 것들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진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