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잎
◆이시카와 다쿠보쿠◆
전차의 창으로 들어와
무릎에 머문 버들잎 ─
여기에도 조락(凋落)이 있다.
그렇다. 이 여인도
운명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
여행 가방을 무릎에 얹어놓고
초라하고, 슬픈 듯하면서도 아련하다.
앉아서 졸기 시작하는 이웃한 여인
당신은 이제부터 어디로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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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다쿠보쿠=(1886~1912)
일본에서 김소월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고 한다.
백석이 좋아했던 시인이라고 하니 더 관심이 간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최초로 근대교육을 받았지만
집안의 몰락과 실패로 불운한 일생을 보내다가 서른도 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짧은 시에서 생활의 비애가 잘 표출되고 있다.
가을,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전차의 창틈으로 우연히 들어온 버들잎도 생로병사라는 ‘운
명의 길’을 겪었다. 시인은 버들잎과 옆자리에 앉은 여인을 등치시킨다. 그러고 보니 생로병
사의 역사에 예외인 존재가 없다.
우리는 모두가 어디로인가 가고 있고, 그 종점은 다 같은 죽음이다. 이 평등의 길 때문에 사
는 일이 저마다 의미로 묵직하다. ‘초라하고, 슬픈’ 인생도 그러나 자주 종말을 잊는다. 그러
니 ‘앉아서 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 모두가 ‘이웃’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러니 악다구니 부리지 말고 다정하게
살 일이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정현종).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
joins.com/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