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의 도둑
◆장석남◆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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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1965~ )경기도 덕적에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등단
1991년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
1999년 「마당에 배를 매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젖은 눈』 등이 있다.
뉴기니의 바우어 새 수컷은 신방을 꾸미고 또 꾸며 암컷을 유혹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
다. 마침내 암컷이 스윽 창을 열고 들어오면 그녀의 굴뚝 빛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들어간다. 심장을 훔치고 아랫배를 훔치다가 그만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저를 꼭 닮은 유전자를 남기고 나온다.
짐을 옮길 때는 다리가 풀리면 안 되지만 사랑을 할 때는 다리가 풀려야 제 맛이라고. 사랑,
모든 걸 다 훔치거나, 모든 걸 다 잃거나! 지금 당신의 뺨을 열고 스윽~.
시인 반칠환 [시로 여는 수요일]
hankooki.com/201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