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앉았다고 모두 꽃은 아니라네
개똥 위에 앉은 네발나비여,
똥 속에 숨어 사는 꽃도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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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1967~ )충북 제천 출생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2편의 시를 발표하고, 1999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 외 4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과 『치워라, 꽃!』
네발나비여. 곤충은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져 있고, 다리는 세 쌍 여섯 개라는 건 유치원
다니는 처조카도 줄줄 외는데, 너는 겸손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다리 두 개를 선뜻 진화의
조물주에게 반납한 것도 모자라 오늘은 꽃을 마다하고 개똥에 앉았구나. 어떤 사람들은 너
를 '개똥 속에 숨은 꽃의 향기를 맡는 선지자'라 부르는구나.
어떤 사람들은 '예토가 정토고 눈물이 진주'라는 설법으로 읽는구나. 하지만 하늘을 날다가
가끔 땅에 내려앉는 네발나비야, 늘 땅에 붙어살다가 가까스로 네발사람에서 두발사람이 된
호모사피엔스는 너처럼 겸손만이 목적은 아니었단다. 발바닥은 똥을 밟아도 손바닥은 꽃을
만지고 싶었단다. 우리는 아직도 똥은 구리고 꽃은 향기롭단다.
시인 반칠환 [시로 여는 수요일]
hankooki.com/201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