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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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1958~ )서울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데뷔.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1988),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0),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1994),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1998), '목소리의 무늬',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나 어렸을 적에', '나는 고독하다', '육체는 슬퍼라', '인숙만필'
'일일일락',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등
1999년 동서문학상을, 2004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리스 블랑쇼는 글쓰기가 “진정한 절망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진정한 절망이란 존재
의 바닥을 경험하는 것이다, 글은 다름 아닌 그 바닥의 표현이다. 온전한 척 어깨에 힘을 준
다고 해서 존재의 빈틈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는 “푸르죽죽한 순”같은 생명성은 바로 그 바닥에서 발견되며, 그 때에 진정
한 “기다림”과 기다림을 “끌어당기”는 힘이 생겨난다. 온전히 바닥에 내려갔을 때 두려워하
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절망 없이 희망 없다. 황인숙 시집 『슬픔이 나를 깨운
다』 수록.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