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먼 길을 돌아 여기에 당도했나
바람의 뼈를 쥔 속울음 사내처럼
굴신의 생애 끝에서 회초리를 꺾는 숲
살아선 한 번도 붙들지 못한 날개
깨어진 수천 조각의 거울에 베인 꿈만
찬란한 물의 형혼을 만져보게 되었나
기억이 부서지는 소리 없는 소리 앞에
물이여, 소스라친 찰나의 눈빛들은
가슴 속 품고 벼려온 모든 칼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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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숙=경남 양산 출생
1991년 중앙일보 중앙시조지상백일장
연말장원 <초설>로 등단 시집 <겨울 묵시록><객토>
<시간의 꽃> <홀씨들의 먼길><그리운 간이역>과 5인 선집
<다섯 빛깔의 언어풍경>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
시조작품상,최계락문학상,이영도시조문학상 수상
〈시작노트〉
마지막 잎새처럼 홀로 달린 달력 한 장, 12월이다. 제 길을 풀어 떠났던 세상의 모든 길은
이제 종착점에 당도했다. 먼 길을 돌아온 물의 한 생애가 마침내 당도한 얼음호수처럼 우
리도 이제 한 해의 모든 길을 접고, 오로지 침묵 속에 빛나는 제 영혼의 몫인 자신만의 얼
음호수 앞에서 겸허히 고개 숙일 성찰의 시간이다.
kookje.co.kr/201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