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꽃
◆문정희◆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 버린다
황홀한 이 규칙을 어긴 꽃은
아직 한 송이도 없다
피 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는
꽃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분별 대신
향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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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약력 :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등.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시집 번역 출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시인협회장.
꽃은 한 번 필 때 모든 것을 다 써버림으로써 “순간”의 생애를 산다. 그것은 순간에 완벽을
이룬다. 순식간에 만개하고 멈춰버리는 삶은 늙을 틈이 없다. 그러니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이 “황홀한 규칙”은 시간을 초월해 있다. 시간의 계산이 개입할 수 없는 이 생애.
그것은 너무나 짧고도 완벽하기 때문에 “분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향기”뿐.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