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의 해산(解産)
◈문태준◈
늙수그레한 매화나무 한 그루
배꼽 같은 꽃 피어 나무가 환하다
늙고 고집 센 임부의 해산 같다
나무의 자궁은 늙어 쭈그렁한데
깊은 골에서 골물이 나와 꽃이 나와
꽃에서 갓난 아가 살갗 냄새가 난다
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넋을 놓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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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1970∼ )경북 김천에서 출생.
1995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
1994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署〉외 9편이 당선
되어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그늘의 발달』
등이 있음.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中.
늙고 늙은 몸이 해산을 하는 사례는 오직 도저(到底)한 식물성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동물
이 주로 촉각을 통해 짧은 생애를 표현한다면, 식물은 향기와 공기로 긴 생애를 끌고 간다. “
늙어 쭈그렁한” 나무가 “갓난 아가” 같은 꽃을 낳고 젖이 퉁퉁 불어 있는 모습은 얼마나 남
세스럽도록 풍만한가.
늙은 나무는 이렇게 세계의 “배꼽”이다. 세계는 동물의 직접성과 식물의 간접성이 피워 올리
는 황홀한 그림이다. 일찍 늙어 죽음 앞에 선 동물이 불멸의 식물성을 경외할 때,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동물의 동성(動性)에 경의를 표한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