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중의 길이
◈구광렬◈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시절,
암모나이트 자갈구이를 먹은 뒤
후식으로 뜯어먹던
꽃 내음을 절벽 쪽에서 맡고선,
길게 손을 뻗어 꽃대를 당겨
곧장 입으로 가져가
생전 닦지 않은 이빨로
원시녀의 귓불을 깨물듯
꽃받침을 깨물고,
설태가 허옇게 낀 혓바닥으로
낭창 꽃잎을 핥다가, 마침내
털이 삐쭉 솟은 콧구멍으로
가져가기까지 걸린 세화(歲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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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렬=(1956~ )대구에서 출생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에서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다.
1986년 여름, 시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El Punto』에 발표하고 중남미 문단에 나왔으며, 한국
문단에서는 시 「바오밥」으로 오월문학상을 수상하고 『현대문학』에
시 「들꽃」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불맛』
『나기꺼이막차를놓치리』 외 4권의 한국어 시집과, 『하늘보다 높은
땅La tierra mas alta que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외 5권의 스페인어 시집이 있다. UNAM동인상,
멕시코 문협 특별상, 브라질 ALPASⅩⅩⅠ 라틴시인상 등을 수상
인도네시아의 플로레스 섬에서 2003년에 화석으로 발견된 ‘플로레스의 인간’ 호모 플로레
시엔시스는 키가 약 1m에 뇌의 크기가 오늘날 인간의 약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인간
이었다. 암몬조개(암모나이트)로 식사를 끝낸 수만 년 전의 또 다른 인류가 후식으로 꽃을
뜯어먹는 장면은 우리 내부의 ‘거친’ 원시성을 환기시킨다.
아, 생전 이빨도 닦지 않고, “설태가 허옇게 낀 혓바닥”으로 “원시녀의 귓불을 깨물듯” 낭창
꽃받침을 깨물고 핥는 삶이 우리의 인중에도 남아 있다면, 그 세월이 만든 꽃(세화)이 인중
이라면, 그 세월의 길이가 그렇게 짧다면.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