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네 마당의 천남성
◈박몽구◈
섶섬이 보이는
이중섭네 사글세방 마당에서
저녁놀 데친 사괏빛으로 타는
초겨울 바다를 본다
는개 질금질금 내리는 속에
불꽃처럼 핀 천남성 몇 송이
중섭네 가족이 긴 겨울밤을
넘기는 것을 지키고 있다.
(…)
빈처를 미군 귀환병
배에 실어 보낸 이중섭이
철필로 새긴 은박지 그림 속
저녁놀을 썰고 있는 게들을 꺼내
긴 겨울밤을 준비하는 저녁
부뚜막에 걸린 무쇠솥 가득
뜨거운 고요가 뜸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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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몽구=(1956~ )전남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영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77년 월간 『대화』 誌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자끄린드 뒤프레와 함께』,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등의 10여권이 있음. 현재 '5월시'
동인이며 계간 『시와 문화』 편집주간.
극심한 가난 속에서 이중섭이 이루고자 한 것은 고작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고,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가 되고
말았다.
세상에, 겨우 식구들이 얼굴 맞대고 사는 것이 유토피아라니. 이중섭 생가에 “불꽃처럼 핀
천남성 몇 송이”가 끝내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은 한 사내의 서글픈 꿈을 위로하고
있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