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풍
◈홍성란◈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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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1958~ ) 충남 부여에서 출생.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1989년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시집 『황진이 별곡』(삶과 꿈, 1998) 등이 있음.
1995년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2007년 현재불교문학상, 2008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97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언젠가 배 타고 서해를 돌다가 작은 무인도에 있는 무덤을 보았다. 죽은 자는 왜 거기까지
갔을까. 햇살과 바닷바람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마를 반짝이던 봉분은 이미 죽음의 서사
(敍事)를 넘어 있었다.
“여기서 저만치”의 짧은 생애는 늘 위태롭지만(“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서 보면 “환한
복사꽃”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성찰은 죽음에서 고통의 질감을 지울 수 있을
때에야 만들어진다. 그런데 꽃의 ‘단명(短命)’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란 얼마나 어
려운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