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주인
◈이재연◈
더 이상 그늘을 찾을 수 없는
밝고 환한 기념일에 기대어
어둠이 없는 것처럼
조금씩 웃다가
아파트로 돌아와
오래된 식탁의 체위 위에 동그랗게 엎드린다
유리병 속 바닥에 엎드린 오디처럼
흔하고 향기로운 빛의 층계,
나는 이전의 형질이 아니다
지금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너의 집에
없는 것처럼 앉아 있다 나는
오디도 아니고
설탕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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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1963~ ) 전남 장흥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2년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집에 “밝고 환한 기념일”이 돌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계가
지워진 식탁에 홀로 앉아 있는 존재는 자신을 마치 없는 존재처럼 느낀다. 사물(“오디” “설
탕”)이 아닌 사람이 이런 슬픈 정물화에 들어가 있으니 얼마나 아플까.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