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
◈주용일◈
고독해 본 사람은 안다
삶이 제 몸 속에 제 이빨 박아 넣는 일이라는 것을
흙벽에 걸린 양파가 제 살 속에
흰 뿌리를 밀어 넣어 푸른 목숨을 부촉하는 겨울
빈들에 눈이 내리고 칼바람이 분다
고독이란 제 자리에서 꿈쩍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형벌이어서
적막한 사방을 위리안치의 몸으로 지켜보는 것이어서
앞산 봉우리 잔설에도 눈이 시리다
얼음 속으로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 쫓아
마음은 가끔 세상을 기웃거리다 돌아오는데
제 몸의 즙액으로 목숨을 견뎌야 하는 이 겨울은
날마다 몸이 마르고 마음이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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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일=(1964~2015) 시인은 충북 영동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 <꽃과 함께 식사>산문집
<시인할래 농부할래>14살에 고향을 떠나 33년간
도시에 살며 회색빛의 아픔을 시에 담아 오다
'지천명'의 나이를 앞둔 2010년 '귀농(歸農)'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그린 그림이다. 그 절해고도에서 가
시 울타리에 갇혀 지낼 때(“위리안치”) 그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김유근)와 아내를 잃었다.
시인은 추사의 ‘세한도’ 안에 자신의 고독을 다시 새겨 넣었다. 이 시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인은 병마에 몸을 빼앗겼다. 2015년 1월의 일이다. 그는 얼마나 고독하게 제 목숨을
견뎠을까.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