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장석남◈
한 덩어리의 밥을
찬물에 꺼서 마시고는
어느 절에서 보내는 저녁 종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마 끝의 별도
생계를 잇는 일로 나온 듯 거룩해지고
뒤란 언덕에 보랏빛 싸리꽃들 핀 까닭의
하나쯤은 알 듯도 해요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고 낯 씻고
내가 저지른 죄를 펼치고
가슴 아픈 일들을 펼치고 분노를 펼치고
또 사랑을 펼쳐요
하여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의
다른 하나를 알아내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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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1965~ )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등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자연의 의미는 따로 존재할 때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서사(敍事)의 일부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서사의 주체인 사람이 빠진 자연은 그냥 사물일 뿐이다. 인간의 삶과 포
개질 때, 자연은 의미의 꽃을 피운다. 저기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을 사람이 만든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