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속담풀이<가편>-21~29
21-구멍 봐가며 말뚝 깎는다 풀이:조건을 보아가며 일을 추진한다.
옛날에 재산 많고 인물 좋은 과부가 있었는데 이 과부는 수절할 마음이 있어서 늘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며 "누구든지 나한테 사내 얘기를 하든지 시집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찔러 죽인다." 고 했다. 그래서 이 과부한테는 개가하라는 사람도 없고 집적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웃 동네에 한 홀아비가 이 소식을 듣고 어디서 큰 칼을 구해가지고 휘두르고 다니면서 "세상에 어떤 놈이든지 날보고 다시 장가들라고 하는 놈이 있으면 당장에 이 칼로 쳐죽일 테다." 하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아비는 허리에 장검을 차고 과부가 늘 다니는 뒷산 밑 샘에 가 있다가 과부가 물 길러 오는 것을 보고는 칼을 뽑아들고 "미친 놈들 같으니라고. 날보고 장개들라고? 십여 년이나 수절하고 있는 나를 보고 어쩌라고? 이놈이 이리 도망쳐 왔는데 어디로 갔지? 나오기만 해봐라. 단칼에 쳐죽여야지. 내가 한번 결심한 이상 내 마음 변할 줄 알고?" 하면서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과부가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하고 방불하거든. 세상에 저런 남자도 다 있나? 저런 남자라면 상종해도 일 없겠다!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남자가 곁으로 오더니 "에이, 한참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마르다. 여보시오. 나 물 한 바가지 떠주시오." 했다. 과부가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주니까 이 남자는 물을 벌떡벌떡 마시고는 바가지를 휙 던져주고 아무 말도 안하고 가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과부는 길에서나 밭 가에서 홀아비를 만나면 눈인사를 하게 되고 또 차츰 짧은 입 인사도 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서로 허물이 없게 되어서 홀아비는 과부네 집을 드나들면서 나뭇단에 부엌에 들여다주고 마당 것을 헛간에다 들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둘은 점점 가까워져 혼인했다고 한다.
22-귀때기 떨어졌으면 이 다음 와 찾지 풀이:꾸무럭대지 말고 한시 바삐 이 자리를 떠나자!
일국의 권세를 쥐고 흔들던 우암 송시열이 노년에 괴산 화양동에 내려와 은거하고 있을 때 얘기다. 어느 날 남쪽으로 부임하는 병사의 행차가 호기있게 화양동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젊은 병사의 행차니 오죽이나 요란한가. "물렀거라!" 소리가 요란하니까 촌 사람들은 모두 꿇어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웬 늙은이 하나만은 장죽을 입에 물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거든. 병사는 괘씸해서 "여봐라. 저놈을 당장 잡아와 굴복시켜라." 하고 호령했다. 부하가 곧 가서 늙은이를 잡아와 병사 앞에 무릎을 꿇렸다. 병사는 "네가 누군데 감히 병사 행차를 우습게 보느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호령조로 물었다. 늙은이는 "예예, 잘못되었습니다. 소생의 이름은 송시열이라고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병사가 들어보니 이거 큰일 났거든. 그렇지만 병사는 기지를 내서 "네 이놈, 네가 감히 그분이 누구라고 그 어른 함자를 도용해 가지고 송시열이라고 하느냐? 이런 무례한 놈이 어디 있느냐?" 하고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저놈은 아마도 정신이 돈 놈일 게다. 저런 돌은 놈을 상대할 것 없이 이 바쁜 행차를 어서 가자!" 하고는 풍우처럼 거기를 떠나버렸다고 한다.
23-귀머거리는 제 마음에 있는 소리만 한다 풀이: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니까 제 마음에 있는 소리만 한다. 남의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하고 제 얘기만 하는 사람을 놀리는 말.
옛날에 온 식구가 몽땅 가는 귀를 먹은 집이 있었다. 하루는 방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데 나무 장수가 "나무 사려! 나무 사려!" 하고 지나간다. 영감이 그걸 듣고 "이 늙은 걸 어쩌자고 또 부역을 나오라는 거여?" 하고 화를 벌컥 내니까 마누라가 "점잖치 못하게 밥에 돌 좀 들었기로 그렇게 화낼 건 뭐우?" 하고 쫑알거렸다. 그러자 아들이 "저 요새 술 안 먹어요." 하고 시치미를 떼니까 며느리는 "어제 콩죽 사온 거 어린애 멕일라고 사온거지 저 먹자고 사온 줄 아세요?" 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계집종이 "아침에 생선 사고 남은 돈 저 한푼도 안 떼어먹었어요." 하며 도리질을 치니까 머슴은 "이놈의 집구석은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나가라 말라 해!"하며 밖으로 팽하니 나갔다. 이때 마침 거지 늙은이가 밥을 얻으러 들어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하도 기가 막혀서, 저 화상들한테 밥 좀 달라고 했다가는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몰라 허기 만나 죽겠다 하고 말도 걸어보지 않고 나가더란다.
24-급하면 밑 씻고 똥 눈다 풀이:똥을 누고 밑을 씻어야 하건만, 급하면 순서가 뒤바뀐다.
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가 싸울 때 얘기다. 진군이 급작스럽게 궤멸하여 진나라 장수 봉백은 조그만 병차에다 두 아들을 태우고 정신없이 달아나는 참이었다. 이때 조전이라는 장수가 맨발로 쫓아오며 "나 좀 태워주오!" 하고 외쳤다. 봉백은 그것이 조전의 음성인 것을 알고 황급한 김에 한다는 소리가 "속히 속히 달려라. 그리고 돌아보지 마라." 하고 두 아들에게 분부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으나 "아버지, 조전이 저렇게 쫓아오며 태워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며 태워줄 것을 간절히 청했다. 그랬더니 봉백은 화를 내며 "너희들이 이미 조전을 봤다면 어째 태우지 않았느냐? 속히 내려가서 어서 모셔라." 하고 꾸짖었다. 꾸중을 듣고 어리둥절한 두 아들은 황망히 뛰어내려 조전을 떠받쳐 태웠다. 이미 혼이 나가 있던 봉백은 조전이 타자, 두 아들이 탔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그냥 병차를 몰고 달아났다. 그래서 미처 병차에 타지 못한 두 아들은 그날 난군중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25-길쌈 잘하는 첩 풀아:이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 첩은 얼굴을 팔아먹고 사는 인간이라 일을 하지 않는다. 길쌈:옷감 짜는 일.
옛날에 어떤 첩이 길쌈 잘한다는 것을 보이려고 서방에게 삼을 사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삼을 사다주니까 "이것도 뚝따리(못 쓸 것), 저것도 뚝따리." 하면서 울 너머로 훌훌 던져버렸다. 큰 마누라는 첩이 버린 삼을 주어다가 베를 짜고 옷을 곱게 지어서 농에다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어느 날 동네에 광대패가 들어왔는데 첩은 입고 갈 옷이 없어서 큰 마누라에게 옷을 빌려달라고 했다. 큰 마누라는 장농을 열고 옷을 꺼내더니 "이것은 자네가 버린 뚝따리로 만든 옷이라 못 쓰겠고, 이것도 뚝따리라 못 쓰겠고." 하면서 옷 자랑만 하고 빌려주지 않았다. 첩은 제가 한 짓거리가 있으니까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런데 구경은 가고 싶고 옷은 없고 하니까 항아리 속에 들어 앉아서 서방보고 지고 가달라고 했다. 서방은 첩이 든 항아리를 지고 구경터로 갔다. 첩은 항아리에서 고개만 내놓고 구경하고 있는데 광대 하나가 여자가 목만 내놓고 구경하는 것이 요상해서 담뱃대로 항아리를 탁 쳤다. 그러니까 항아리는 깨지고 벌거벗은 여자가 툭 튀어나왔다. 구경꾼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웃으니까 첩은 그만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고 이리 살살 저리 살살 기어다니다가 집없는 달팽이가 되었다고 한다.
26-김씨가 한몫 끼지 않은 우물은 없다 풀이:김씨가 흔하다는 뜻. 김씨는 제일 흔한 성이고 그중에서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 인구의 6분지 1이나 된다고 한다.
김해 김씨가 흔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왕이라 일가 친척이 전혀 없어서 외로웠다. 김수로왕이 세상을 떠날 때 좋은 묘자리가 세 자리 났는데 하나는 자손이 많이 퍼질 자리고, 또 하나는 부자될 자리고, 나머지 하나는 벼슬할 자리였다. 그런데 김수로왕은 일가친척이 없어 외로웠기에 자손이 많이 퍼질 자리를 택해서 지금 김해 김씨가 그렇게 많이 퍼졌다는 얘기.
27-꿩 대신 닭 풀이:필요한 것이 없으면 비슷한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뜻.
우리 풍속지에 보면 옛날에는 설날 흰 떡국을 반드시 꿩고기로 끓였다고 한다. 그러나 꿩을 잡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어서 꿩이 없으면 꿩 대신 닭을 썼고 닭이 없으면 소고기를 썼다고 한다.
28-까마귀 학이 되랴 풀이:못난 놈이 갑자기 잘난 놈이 되겠는가?
옛날에 바보 신랑이 처갓집에 가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술, 부침개, 인절미 그리고 닭 한 마리를 싸주었다. 신랑은 가다가 고갯마루에서 보따리를 풀러보았다. 그런데 뭐가 뭔지 이름을 몰라서 하나하나 들춰 보다가 이름을 제멋대로 지었는데, 인절미는 늘렸다 놓으면 쪼르르 줄어든다고 해서 늘쪼르래기, 부침개는 기름이 질펀하니까 질펀이, 술은 흔들어보니 울렁출렁 소리가 나서 울렁출렁이, 닭은 꺽꺽 울며 날개를 푸드득거린다고 해서 꺽꺽푸드더기라고 지었다. 처갓집에 도착하자 장모가 맞으러 나오며 물었다. "뭐를 그렇게 많이 가져오나?" "예, 늘쪼르래기하고 질펀이하고 울렁출렁이하고 꺽꺽푸드더기 가져왔어요."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어서 짐을 풀어보니 인절미, 부침개, 술, 닭이 나오거든. 장모는 기가 막혀서 "아니, 이거 바보 아냐?" 하며 부지깽이로 사위를 때렸다. 색시는 바보 신랑을 뒤곁으로 데리고 가서 "가지고 온 거는 인절미, 부침개, 술, 닭이니 우리 아버지가 묻거든 그렇게 대답하세요." 하고 가르쳐 주었다. 장인이 들어오니까 장모는 "이거 바보 사위를 얻어서 야단났수다." 하고 사위 흉을 보았다. 그러나 장인이 사위를 불러서 뭐뭐 가져왔냐고 물으니까 사위는 색시가 가르쳐 준 대로 인절미, 부침개, 술, 닭이라고 제대로 댔다. 장인은 사위가 물건 이름을 제대로 대니까 "이놈의 여편네, 아무렇지도 않은 사위보고 바보라고 해?" 하며 장모를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장모가 맞지 않으려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사위란 놈 뭐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장모'란 말도 생각이 안 나고 '도망간다'는 말도 생각이 안 나니까 "고놈에 노친네, 일루루(이리로) 간다 델루루(저리로)간다." 하더란다.
29-꿈은 아무렇게나 꾸어도 해몽만 잘하면 된다 풀이: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라는 말.
고려 말에 이성계가 왕이 되고 싶어 경상도 남해 섬의 금산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고 나서 그는 연 사흘 동안 이상한 꿈을 꾸었다. 첫째날은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지는 꿈이고 둘째날은 목 없는 병이 보이고 셋째 날은 큰 가마솥에 들어가는 꿈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점쟁이 노파네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점쟁이 노파가 없어서 그 딸에게 물어보았더니 "서까래 세 개는 관에 끌려가서 곤장 세대를 맞는 꿈이고, 목없는 병은 목 짤리는 꿈이고, 큰 가마솥은 팽형을 받을 꿈입니다." 하고 해몽해주었다. 이성계는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는 정반대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지면 왕(임금왕)자가 되니 왕이 되는 꿈이고, 목없는 병을 들려면 누구나 조심해야 하니 조심하고 우러러 보는 인물이 되는 꿈이고 큰 가마솥에 들어가는 것은 금성철벽같은 굳은 성채로 들어앉는 꿈입니다." 하고 해몽해주었다. 이성계는 대단히 좋아했다. 그후 이성계는 노파가 해몽해준 것을 믿고 적극적으로 거사를 진행시켜 왕이 되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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