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 조각을 밟고 혼례의 승낙을 구하려
네 집 대문을 두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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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서=(柳璘徐) 1960년 대구출생
2001년 계간 《시와 시학》에 〈꽃 진 자리〉 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에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여우』가 있음.
2009년 제6회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과
2010년 제11회 청마문학상 신인상 수상. .
가을 밤은 차고 가을 물소리도 차다. 올려다보면 서걱이는 별의 찬란한 행렬이 이승의
끝이 어디인가 묻고 있다. 수억 광년 저편의 공간을 가로질러 온 빛들. 수억 광년이라니.
그것은 시간의 이름인가? 허무의 이름인가? 아니면 무변(無邊)한 인생의 이름인가?
별은 소리를 내듯, 숨을 쉬듯이 하늘을 빛내는데 우리는 왜 때로 아프게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 저 찬란한 하늘의 빛들이 때로는 유리 조각의 그것처럼 통증의 무늬로 보이는가.
아프지만 필사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목숨을 내놓고 가야만 하는 길이 있나보다. 가령 '혼례' 같은 것 말이다. 유리 조각을
밟으며 혼례 승낙을 구하러 오는 이 있다니 그것은 세속의 결혼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대우주에서 짐승을 거쳐 인간으로 내려오는, 기쁨과 슬픔이 반분한 사랑의
향연. 비밀문서처럼 숨어 아름다운 시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Chosun.com-2013.10.26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