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강기원◆
사랑은… 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멜론 수박 배 감…
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송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을 남김없이 빨아 먹는 것
앙상한 늑골만 남을 때까지…
그래, 마지막까지 함께 썩어 가는 것……
썩어 갈수록 향기가 진해지는 것……
그러나 복숭아를 먹을 때 사랑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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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원=(1957∼ )서울 출생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2005년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세계사)
2006년 시집 『바다로 가득 찬 책』(민음사)
2006년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사랑은 영혼을 교란시킨다.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는다. 사랑은 방향 감각을 잃고 갈팡질팡
하며, 비현실적 환상 속을 헤매 일상이 뒤죽박죽 엉키게 만든다. 사랑이란 “뇌수마저 송두
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이거나 상대 “살점을 남김없이 빨아 먹는 것”이다.
사랑이 깊으면 광기도 깊다. 썩어가는 과일이 그렇듯 무르익은 사랑의 향기도 진동한다. 하
지만 어떤 사랑이든지 사랑은 불완전한 완전이고, 두 번 반복되지 않는 기적이다. 사랑하면
신의 영역까지 넘본다. 제 사랑을 감히 ‘영원’과 ‘불사’에 매달고 끌어달라고 간청한다.
<장석주·시인>
joins.com/201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