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방석이 비를 맞고 있다.
지금까지 앉혀본 것 중
가장 가벼운 빗방울을 앉히고 있지만
방석은 지금 가장 무거워지고 있다.
어느 식당에서 나왔는지 방석엔 상하가 없고
안 앉혀본 직위가 없어 온갖 비밀을 다 품고 있다.
눌렸던 무게들과 텅 비어 있던 무게들 중
어느 것이 제 무게인지 알 수 없는 방석
어느 날은 거만한 바닥이었고
또 어느 날은 안절부절 하던 바닥이었으리라.
한 번도 무거웠던 적이 없던 바닥이
빗방울을 앉히고
마소의 잔등처럼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가장 뜨거운 바닥으로
온전히 제 무게에 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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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경기도 수원 출생.
*장안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수료.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구름모자를 빼앗아쓰다〉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바람은 색깔을 운반한다』,『혼잣말씨』.
*2014년 천강문학상 대상 수상.
청운의 햇솜 품은 신입 방석 때였지. 방바닥은 뜨겁고, 엉덩이는 무거워 숨이 막혔지. 비명
을 지르려 했지만 지퍼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달아나려 했지만 발이 없었지. 무거운 엉덩
이로 가슴팍을 누르면 네 귀만 쫑긋 솟아올라 하릴없이 세상 이야기 들었지. 따뜻한 이야기
도 있었고,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지.
방석 생활 몇 달 만에 어떤 비밀도 음모도 새롭지 않았지. 더러 입이 열려도 진실을 말할 수
없게 되었지. 점차 탄력은 줄고 얇아지게 되었지. 이젠 버려져 빗물로 한껏 부풀어보지만,
아무도 앉힐 수 없는 나는 더 이상 방석이 아니지.
시인 반칠환 [시로 여는 수요일]
hankooki.com/201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