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
◈T S 엘리엇◈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낳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휘젓는다.
겨울엔 오히려 따뜻했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에 약간의 생명을 대주었지.
슈타른베르크 호수를 건너
한바탕의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찾아왔어.
우리는 주랑에 비를 피했다가,
해가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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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1888~1965)=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OM)미국계 영국 시인, 극작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후에 영국에 귀화했다.극작가로서 활약하기
전에는 시 〈황무지〉로 영미시계(英美詩界)에 큰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또한 비평가로서도 뛰어나 일약 유명해졌다.
누구나 봄(“사월”)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봄은 모든 것을 잊고(“망각의 눈”) 무사유
(無思惟)의 죽은 상태(“겨울”)에서 대충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봄
은 언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거)과 “욕망”(미래)을 마구 뒤섞으며 죽음의 문
화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깨운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것이 봄의 명령이다. 관(棺) 속의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잔인한 일은 없다. 봄은 “황무지”를 휘저어 생명으로 인도
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