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러워도 괜찮아
◈김이듬◈
요가원에 등록했다
인도에서 수련하고 온 선생은
정갈한 수도승 같은 인상이다
옴 샨티 낮고도 맑은 목소리가 좋다
눈을 감고 마음을 바라보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겐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하자
차차 잡념을 버리게 될 거라며 웃는다
웃는 미간 사이에서
밝은 빛이 퍼져나가는 듯하다
며칠 후 지하철역에서 선생을 봤다
감색 요가복 대신 가죽점퍼에 청바지,
상투처럼 묶었던 머리칼을 풀어 내리고 있다
무언가에 짜증이 난 표정이다
그저 그렇다 평범하고 너무나 평범한 행인이다
화장이 진해서인지
그 빛나던 밝은 빛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더 좋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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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1969~)경남 진주 출생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시와세계작품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수상
몸을 넘어 무념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가. 무엇이든 넘어가고 싶은가. ‘너머’의 세계에 대한
욕망은 현재를 결핍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너머’를 넘어
무(無)결핍의 현존(現存)이 될 수 없다.
자아가 아무리 보초를 잘 서도 리비도(Libido)는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자아가 잠들면 꿈
의 외피를 쓰고 얼굴을 들이민다. 적절히 “잡스러워”지는 것도 지혜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
까지가 ‘적절한’ 것인가.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