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 장
◈김연필◈
나의 문법으로 걸음을 걸어 본다.
나의 문법에서 나오는 걸음을 바라본다.
나의 문법은 나처럼 천천히 걷는다.
나의 문법은 나처럼 흔들리며 걷는다.
나의 문법의 걸음을 조용히 따라가 본다.
나는 지금 나의 문법을 따라가고 있고
나는 지금 나의 문법을 상상하고 있다.
나는 나의 문법으로 생긴 걸음이다.
나는 나의 걸음으로 생긴 마음이다.
나는 나의 마음으로 생긴 계산이다.
나는 나의 문법을 계산하며 조금씩 걷는다.
나는 나의 계산을 상상하며 조금씩 걷는다.
상상 속에서 나의 문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모든 길이 보이고,
모든 문법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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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필=(1986~ ) 2012년 《시와 세계》에
「대화」외 4편을 발표하며 등단
“나는 나의 세계다.”(비트겐슈타인) 누구나 자기 “문법”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러나 모든
개체는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고, 계산하며, 이야기하고, 보며, 걷는다. 그리하여
개체들이 마침내 당도하는 곳은 “광장”이다. “그 누구도 섬이 아니다.”(존 던)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joins.com/201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