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의모음(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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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뭉클-이사라**
뭉클 ◎이사라◎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 그 많던 시간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이렇게 “저녁이 쉽게 오다니”... 나이를 먹으면 왜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쟈네의 법칙(Pierre, Janet, 1859-1947)’에 의하면..
2020.06.04 -
**[이 아침의 시]잠-김행숙(1970~)**
잠 ―김행숙(1970~) 눈을 감았다는 것 발가락이 꼬물거리며 허공으로 피어오른다는 것 발바닥이 무게를 잊었다는 것 감은 눈처럼 발은 다른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그곳에 속하는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 中 ====================================================================== 잠에 빠져들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나른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과일을 먹고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휴대폰을 쥐고서 스르륵 잠에 빠져 봅니다. 몸에서 가장 먼 곳부터 허공으로 떠오릅니다. 잠깐 쉬었다 가도 좋겠지요. 잠깐 쉬었다가 반짝 눈을 떠도 좋겠지요. 잠을 자는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눈을 떠서 사고 친 강아지의 흔적을 치우고, 방긋 웃는 ..
2020.06.03 -
**[이 아침의 시] 깨끗한 수건을 모으다-한영옥**
깨끗한 수건을 모으다 ◇한영옥◇ 마음 푸근한 사람들과 마주앉아 조근조근 주고받던 틈서리에 피었던 말 꽃의 내음 순한 향내를 잃을세라 집으로 돌아와서 깨끗한 수건에 잘 끼워두었습니다 서랍 첫 칸에 잘 접어두었습니다 귀하게 모아둔 수건 몇 장 있으니 비참의 기분 툭툭 털기도 좋고 벌떡이는 심장 누르기도 좋습니다 앞으로 몇 장은 더 모아야겠다 싶어 사람 만나러 가는 저의 매무시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곤 합니다 ================================================================================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골라 써야 한다’는 말이 맞는 걸까요? 그렇다면 고쳐 쓸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자존감을 갉아 먹고..
2020.05.28 -
**[이 아침의 시] 작은 화분**
작은 화분 ―이지아(1976~) 피에로가 졸고 있다 풍선들을 생각하면서 노곤한 군중 속에서 잠에 빠진 피에로가 고개를 흔들고 있다 진짜로 멀리 가고 싶지는 않아 흘러내리는 가발을 다시 씌워준다 시집 《오트 쿠튀르》 (문학과지성사) 中 ....................................................................
2020.05.18 -
**[이 아침의 시] 아기메꽃**
아기메꽃 ◇홍성란◇ 한 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 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치마 계집애 ................................................................................................................................. ‘아픈 만큼 성숙(maturation)하는 걸까’, 성숙하게 되..
2020.05.18 -
**[이 아침의 시] 모란이 피네**
모란이 피네 ―송찬호(1959~) 외로운 홑몸 그 종지기가 죽고 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런데 얘야,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 오지 그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그것의 코만 베어 온 것 아니냐 머리만..
202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