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의모음(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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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단]황주경-압록강**
압록강 ◈황주경◈ 강 저 깊은 곳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찢어 소리 없이 떠오를 것 같은 피비린내 대신 달큰한 젖냄새가 났다 망원경으로 들여다 본 양강도 혜산 강변, 빨랫방망이로 봄을 깨우다 말고 보채는 아이에게 가슴을 풀어 젖을 물리는 아낙네가 보였다 아, 저이들은 자식을 위..
2016.09.12 -
**[가슴의 시]이태수-환한 아침**
환한 아침 ◈이태수◈ 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
2016.09.05 -
**[가슴의 시]문동만-그네**
그 네 ◈문동만◈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 사람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
2016.09.03 -
**[국제시단]정미혜-수박화채**
수박화채 ◈정미혜◈ 우물에 담가 둔 수박 슬슬 끌어올리면 수박만 한 웃음이 가득 두 쪽으로 쫙 가르면 큰 양푼이에 쏟아지던 아이들의 환호성 얼음집에서 사 온 사각 얼음 톡톡 깨어 넣을 때 숨죽이고 침을 꼴깍 설탕을 솔솔 뿌릴 즈음 우르르 오남매의 숟가락질 순식간에 사라진 수박..
2016.08.31 -
**[가슴의 시]김남극-마흔다섯**
마흔다섯 ◈김남극◈ 자꾸 입안이 헐어서 병원을 찾았으나 낫지 않는다 한의사 친구를 찾아갔더니 맥도 짚어보고 입속도 들여다보더니 처방을 해줬다 마음을 좀 곱게 쓰고 상처 주는 말을 좀 그만하라는 게 처방의 전부였다 나는 성질이 못돼먹어서 자꾸 입병이 난다고 했다 말로 남에..
2016.08.22 -
**[국제시단]이정모-그늘**
그 늘 ◈이정모◈ 입은 다물고 드러내기만 하는 생이 기다림의 무게를 척 펼쳐 놓는다 거친 숨소리만 남은 길에서 문득 고개 돌려 뒤를 보면 다시는 못 온다 밑바닥을 깔고 계시는 분 어차피 경계란 바람의 몫인데 어디까지 가시려나 온 몸을 열어 펄펄 끓는 시간을 불러 앉히는데 땀을 ..
201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