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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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시] 모란이 피네**
모란이 피네 ―송찬호(1959~) 외로운 홑몸 그 종지기가 죽고 종탑만 남아 있는 골짜기를 지나 마지막 종소리를 이렇게 보자기에 싸 왔어요 그런데 얘야, 그게 장엄한 사원의 종소리라면 의젓하게 가마에 태워 오지 그랬느냐 혹, 어느 잔혹한 전쟁처럼 그것의 코만 베어 온 것 아니냐 머리만..
2020.05.18 -
**[이 아침의 시] 밥상**
밥상 ㅡ이준관 밥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상장을 받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나는 날마다 상, 푸짐한 밥상을 받습니다. 어쩐지 남이 받을 상을 빼앗는 것 같아서 나는 밥상 앞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밥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2020.05.18 -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45>정말 그럴 때가**
정말 그럴 때가 ―이어령(1934∼)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울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
2020.05.16 -
**[시로여는 수요일] 봄비**
봄 비 ―박기섭 하늘 어느 한갓진 데 국수틀을 걸어 놓고 봄비는 가지런히 면발들을 뽑고 있다 산동네 늦잔칫집에 安南 색시 오던 날 ................................................................................................................................. 봄 들판 적시는 빗줄기 가늘고 곱다 싶었는데 그 동네..
2020.05.15 -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113)삼우(三虞)**
삼우(三虞) ―이대흠(1967~ ) 당신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여읠 때 비가 왔어요 허공 풍선에서 푸시시 빗방울들이 빠져나오고 모과나무 묵은 옹이는 마음에 불거진 남북처럼 불쑥 나타났어요 하늘에서 하늘이 다 달아나버리고 하늘이 지워졌어요 어제까지 보였던 당신인데 당신은 내 마음속..
2020.05.14 -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112)방언(方言)**
방언(方言) ―김성규(1977~ ) 점자를 읽듯 장님이 칼을 만진다 칼날에 피가 번진다 사람들이 소리 죽여 웃는다 칼은 따뜻하다! 자신이 새긴 글씨가 상처인 줄 모르고 기뻐하는 장님을 보라 쏟아지는 피를 손바닥으로 핥으며 자신도 모르는 글씨를 칼날에 새기고 있다 몸에서 잉크가 떨어질 ..
2020.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