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싶은詩(162)
-
**이순주-콩나물 설법**
콩나물 설법 ㅡ 이순주 까만 보에 싸여 어둠 속 웅크린 알 깨어난다 고개를 밀어 올리며 세상을 향한 물음표로 자란다 한 줌에 딸려 나와 누군가 몸 깨끗이 씻어주는 날 둥그런 들통 열탕에 들어 거듭난다 무료 급식판에 담겨 한 숟가락 둥둥 공중에 떠오를 때 일생 딱 한 번 햇살과 눈 마..
2020.02.05 -
**이상국-형수**
형수 서둘러 저녁이 오는데 헐렁한 몸뻬를 가슴까지 추켜 입고 늙은 형수가 해주는 밥에는 어머니가 해주던 밥처럼 산천이 들어 있다 저이는 한때 나를 되련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쥐눈이콩 한 됫박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며 아덜은 아직 어린데 동세가 고생이 많겠다고 한다 나는 예, ..
2020.02.03 -
**김주대-터미널**
터미널 ◇김주대◇ 큰 가방을 들고 훌쩍거리던 아이가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자 늙은 여자는 달려가 까치발을 하고 아이 앉은 쪽 차창에 젖은 손바닥을 댄다 버스 안의 아이도 손바닥을 댄다 횟집 수족관 문어처럼 달라붙은 하얀 손바닥들 부슬비 맞으며 떠나는 버스를 늙은 여자가 따라..
2020.01.29 -
**신용목-별**
별 ◇신용목◇ 밤의 입천장에 박힌 잔이빨들, 뾰족하다 저 아귀에 물리면 모든 罪가 아름답겠다 독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별의 갈퀴 하얀 독으로 스미는 죄가 나를 씻어주겠다 ----------------------------------------------------------------------------------------------------- 새벽. 담배를 피우며 별을 ..
2020.01.28 -
**김남주-설날 아침에**
설날 아침에 ㅡ 김남주 눈이 내린다 싸락눈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린다 뿌리뽑혀 이제는 바싹 마른 댓잎 위에도 내리고 허물어진 장독대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옹기그릇에도 내리고 소 잃고 주저앉은 외양간에도 내린다 더러는 마른자리 골라 눈은 떡가루처럼 하얗게 쌓이기도 하고 닭이 ..
2020.01.24 -
**천상병-소릉조(小陵調)**
소릉조(小陵調) ㅡ 천상병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1970년 秋夕에- ----------------------------..
2020.01.23